최근 몇 년 사이 물가가 오르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다. 이 단어는 '줄어들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이 합쳐진 말로, 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두고 크기나 양, 혹은 품질을 몰래 줄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겉으로는 가격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단위당 비용이 올라가는 셈이다. 기업들이 물가 상승과 원자재 비용 증가를 소비자에게 직접 전가하기 부담스러울 때 자주 쓰는 전략으로,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과자, 음료, 생필품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의 기원과 역사
이 용어는 영국의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Pippa Malmgren)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코카콜라와 펩시가 음료 캔 크기를 줄여 사실상 가격을 인상한 사례를 지적하며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표현을 트위터에 올렸다. 하지만 이런 행위 자체는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신문에서는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빵의 무게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기사가 실린 바 있다. 당시에는 용어가 없었을 뿐, 기업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제품 크기를 조정하는 방식은 이미 익숙한 관행이었다.
오늘날에는 과자 한 봉지에 담긴 개수가 줄거나, 화장지 롤의 길이가 짧아지는 식으로 나타난다. 한국에서도 '질소 과자'라는 표현이 유행하며 제과업체들이 포장만 그럴듯하게 유지한 채 내용물을 줄이는 사례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빈번히 회자된다.
왜 기업들은 슈링크플레이션을 선택할까?
기업 입장에서는 슈링크플레이션이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인다. 소비자들은 가격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용량이나 크기 변화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한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과자 한 봉지의 가격이 1,500원에서 2,000원으로 오르면 불만이 쏟아지겠지만, 같은 가격에 내용물이 80g에서 70g으로 줄어도 이를 눈치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포장 디자인을 화려하게 바꾸거나 용기를 약간 변형하면 소비자들이 변화를 알아차리기 더 어려워진다.
이런 전략은 특히 인플레이션 시기에 두드러진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인건비와 운송비가 상승하면서 기업의 수익성이 위협받을 때, 가격을 직접 올리는 대신 슈링크플레이션을 통해 비용을 충당하려는 시도가 늘어난다. BBC 보도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영구적인 문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기업이 한 번 줄인 용량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불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슈링크플레이션이 교묘한 속임수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구매력이 떨어지는 시기에, 같은 돈을 내고도 적은 양을 받는다는 사실은 불쾌감을 넘어 불공정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에서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 까르푸(Carrefour)가 슈링크플레이션 제품에 경고 스티커를 붙이며 소비자들에게 변화를 알리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이를 통해 네슬레의 유아용 분유가 900g에서 830g으로 줄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소시지, 만두, 맥주, 치즈 등 일상에서 자주 구매하는 품목에서 용량이 줄어든 사례가 확인됐다. 예를 들어, 냉동 핫도그가 5개에서 4개로, 맥주 캔이 375ml에서 370ml로 변하는 식이다. 이런 변화는 포장이 비슷하거나 새 디자인으로 교체되면서 소비자들이 즉각 알아채기 어렵게 설계된다.
스킴플레이션과의 차이점
슈링크플레이션과 비슷한 개념으로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이라는 용어도 주목받는다. '아끼다'는 뜻의 '스킴프(skimp)'와 인플레이션이 결합된 이 단어는, 양은 그대로 두고 품질을 낮추는 행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 오렌지 주스의 가격과 용량은 같지만 오렌지 함량이 줄고 물이나 설탕 비율이 늘어난 경우가 스킴플레이션에 해당한다. 둘 다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슈링크플레이션은 양의 변화에, 스킴플레이션은 질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세계 각국의 대응과 한국의 움직임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커지면서 각국에서 대응책이 나오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용량 변화가 있을 경우 이전과 이후의 수치를 6개월 이상 포장에 표시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했다. 프랑스는 슈퍼마켓에 용량 감소 사실과 단위당 가격 변화를 고지하도록 규제를 도입했다. 이런 조치들은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도 정부가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용량이나 성분 변화를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는 행위를 '부당한 소비자거래행위'로 규정하며 단속에 나섰다. 또한, 소비자원이 운영하는 '참가격' 사이트를 통해 용량 변화 정보를 제공하고, 단위 가격 표시제를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라며 소비자에게 변화를 알리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
기업과 정부의 노력만큼이나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제품을 살 때 용량과 단위당 가격을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첫걸음이다. 포장 겉면에 적힌 숫자를 유심히 보고, 이전과 비교해 변한 점이 있는지 체크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SNS에서는 소비자들이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를 공유하며 기업에 압박을 가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이면 기업의 '꼼수'를 줄이는 데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의 미래
경제가 안정되더라도 슈링크플레이션이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익숙해진 비용 절감 전략이고, 소비자들이 큰 저항을 하지 않는 한 계속 활용될 여지가 크다. 하지만 소비자 인식이 높아지고,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투명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결국 기업, 정부, 소비자 모두가 균형을 맞추며 공정한 거래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슈링크플레이션은 단순한 경제 현상을 넘어 소비자와 기업 간 신뢰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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