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회

일본 관광객이 한국에서 쌀을 사가는 이유: 쌀값 폭등과 그 배경

TFTC 2025. 4. 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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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관광객들 사이에서 ‘쌀’이 필수 쇼핑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 쌀값이 폭등하면서 한국의 저렴한 쌀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일부 관광객은 여행 중 무거운 쌀 포대를 짊어지고 공항 검역 절차까지 감수하며 쌀을 구매해 간다. 이 현상은 단순한 쇼핑 트렌드를 넘어 일본의 쌀 부족 사태와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일본 관광객이 한국 쌀을 사가는 이유와 그 배경, 그리고 일본 쌀 시장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일본 쌀값 폭등: 1년 만에 두 배 뛴 가격

일본의 쌀값은 최근 1년 사이 급격히 상승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5kg 쌀의 평균 소매가격은 약 4077엔(약 3만9800원)으로, 1년 전보다 99.3% 올랐다. 이는 한국의 동급 쌀 가격(약 1만5000~2만원)의 2~3배 수준이다. 니가타산 고시히카리 같은 고급 품종은 60kg 도매가가 2만8050엔(약 25만원)을 기록하며 3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런 가격 폭등은 일본 소비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슈퍼마켓 쌀 진열대는 텅 비거나 구매 제한(1인당 1포대)을 두는 곳이 늘었고, 일부 소비자는 밥 대신 빵이나 면류로 식사를 대체하고 있다. 오사카 카타노시에서는 쌀값 상승으로 초·중학교 급식의 쌀밥 제공 횟수를 주 2회로 줄이고 빵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쌀을 사가는 주요 동기가 되고 있다.

 

한국 쌀, 왜 인기일까?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쌀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지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쌀은 품질 면에서도 일본 쌀과 비슷하거나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한국의 자포니카 품종(단립종)은 일본의 고시히카리나 사사니시키와 유사한 끈적한 식감과 단맛을 자랑해 일본인 입맛에 잘 맞는다. 한 일본 관광객은 블로그에 “한국 쌀 10kg이 3000엔(약 3만원) 수준인데, 일본에서는 8000엔(약 8만원)을 내야 한다”며, 검역과 수하물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경제적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쌀 생산과 유통이 안정적이며, 농협과 미곡종합처리장(RPC)을 통해 품질 좋은 쌀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한다. 반면, 일본은 높은 관세(수입 쌀에 778%)와 감산 정책으로 자국 쌀 의존도가 높아 가격이 쉽게 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을 경유하며 쌀을 구매한 한 일본인은 “슈퍼마켓에서 쌀값을 꼼꼼히 비교한 끝에 백미 4kg과 현미 5kg을 샀다”며, 공항에서 검역증명서를 발급받는 과정을 상세히 공유했다.

 

일본 쌀 부족 사태의 원인: 무엇이 문제일까?

일본의 쌀 부족 현상은 여러 요인이 얽혀 있다. 단순히 관광객의 쌀 소비 증가나 사재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문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1. 기후 변화와 흉작

지난해 일본은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 폭우로 주요 쌀 산지(니가타, 이시카와, 야마가타, 후쿠시마 등)에서 벼 피해가 심각했다. 농림수산성은 2023년 쌀 생산량이 679만 톤으로 전년 대비 18만 톤 늘었다고 발표했지만, 농민들은 “실제 수확량은 줄었다”고 반박한다. 오시마 야스시(오시마 농장 대표)는 “정부 통계가 부정확하다”며, 농협 집하량 감소가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불안정한 수확은 쌀 공급을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2. 감산 정책과 농지 축소

일본은 1970년대부터 쌀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지 축소와 감산 정책을 시행해왔다.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논 면적을 줄이고, 쌀 생산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한 결과, 2021년 밥쌀용 쌀 생산량은 700만 톤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2008년 이후 최저치다. JA농협은 높은 쌀값을 유지해 수수료 수익을 늘렸고, 농림수산성은 농가 표를 의식해 이 정책을 지속했다. 하지만 감산으로 생산 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기후 악화와 수요 증가가 겹치며 공급 부족이 심화되었다.

3. 관광객 수요와 외식 증가

코로나19 종식 후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며 쌀 소비가 늘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2024년 1~4월 일본 방문객은 1160만 명으로 전년 대비 486만 명 증가했다. 초밥, 덮밥 등 쌀 기반 요리의 수요가 폭증하며 외식업계의 쌀 소비량이 1년 만에 2.7배 늘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관광객의 쌀 소비가 전체 수요의 0.5%(약 3만 톤)에 불과하다며, 이를 주요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4. 유통 구조의 변화와 통계 오류

일본 쌀 유통은 과거 농협 중심이었지만, 최근 온라인 직거래가 늘어나며 정부의 데이터 수집이 어려워졌다. 와타나베 요시아키(니가타식량농업대학 명예학장)는 “쌀 통계조사원이 줄어 표본 조사의 정확도가 떨어졌다”며, 정부가 실제 생산량과 유통량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농협 매입량은 215만 톤으로 전년 대비 21만 톤 줄었지만, 이는 직거래 증가나 통계 오류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 대응: 비축미 방출의 한계

일본 정부는 쌀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비축미 21만 톤을 방출했다. 이는 동일본 대지진(4만 톤)이나 구마모토 지진(90톤) 때보다 훨씬 큰 규모로, 재난 외 상황에서는 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비축미 방출은 쌀값 안정에 제한적인 효과만 낸다. 비축미는 연간 수백억 엔의 유지비와 운송비가 추가되어 저렴하게 판매되기 어렵다. 게다가 일본 소비자들은 자국 쌀의 품질을 선호해, 미국산(5kg당 2500~3000엔) 같은 외국산 쌀 소비는 미미하다. 전문가들은 비축미로 인한 가격 하락 효과를 10% 정도로 보며, 소비자 체감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는 투기세력의 매점매석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쌀 21만 톤을 보관하려면 26만2500㎥의 창고가 필요해 현실성이 낮다. 결국, 쌀 부족의 근본 원인은 생산량 감소와 수요 예측 실패로 귀결된다.

 

한국 쌀 쇼핑: 관광객의 실제 경험

일본 관광객들의 한국 쌀 구매는 단순한 일화가 아니다. 한 일본인 관광객은 필리핀 세부 여행 후 한국을 경유하며 쌀 9kg(백미 4kg, 현미 5kg)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그는 “비행기표와 수하물 비용을 합쳐도 일본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하다”며, 공항에서 검역 신고와 세관 절차를 꼼꼼히 설명했다. 또 다른 관광객은 한국 슈퍼마켓에서 쌀값을 비교하며 “일본 쌀은 10kg에 8만 원, 한국은 3만 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쌀은 공항에서 검역증명서를 발급받아 일본으로 반입할 수 있으며, 개인당 10kg 내외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내 쌀 부족으로 한국 쌀 수출도 늘어나고 있다. 높은 관세(778%)에도 한국 쌀의 가격 경쟁력이 돋보이며, 일본은행 직원 식당에서도 대만산과 함께 한국산 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 쌀 시장의 구조적 문제: JA농협과 농지 축소

일본 쌀값 폭등의 뿌리에는 JA농협과 농지 축소 정책이 있다. JA농협은 농가로부터 쌀을 매입해 정부에 공출하며, 높은 쌀값으로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한다. 이를 위해 농림수산성은 농지 축소 정책을 통해 쌀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렸다. 이 정책은 농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지만, 농촌 고령화(농가 평균 연령 70세 이상)와 청년 유입 부족으로 쌀 생산 능력이 급격히 줄었다.

JA농협은 일본 최대 기관투자가로 성장했지만, 농업은 쇠퇴했다. 쌀값이 5kg당 3300엔을 목표로 올랐지만, 실제로는 4000엔을 돌파하며 정부의 통제력을 벗어났다. 야당도 농가 표를 의식해 높은 쌀값 정책을 지지하며, 구조적 개혁은 요원하다.

 

쌀 부족이 일본 사회에 미치는 영향

쌀값 폭등은 일본 서민들의 식생활을 위협한다. 엥겔계수(식료품 지출 비율)가 선진국 중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저소득층은 쌀 대신 저렴한 대체 식품에 의존한다. 초밥 가게와 도시락 업체는 쌀값 인상으로 메뉴 가격을 10~20% 올렸고, 일부 업체는 쌀 사용량을 줄인 메뉴를 개발 중이다. 소비자 사재기와 구매 제한은 쌀 부족에 대한 불안 심리를 키운다.

이런 상황은 일본 관광객들이 해외, 특히 한국에서 쌀을 사가는 현상을 가속화한다. 한국 쌀 쇼핑은 단순한 비용 절감 이상으로, 일본 쌀 시장의 불안정성과 공급 부족을 상징한다.

 

해결책은? 일본 쌀 시장의 미래

일본 쌀 부족 사태를 해결하려면 단기적 대응과 장기적 개혁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비축미 방출에 가격 제한을 두고, 외국산 쌀 관세를 낮춰 공급을 늘릴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농지 축소 정책을 재검토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한 농업 기술 개발이 필수다. 쌀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고, 온라인 직거래를 포함한 유통 구조를 정비해야 한다.

또한, 쌀 가공식품(냉동 김밥, 쌀국수 등) 개발과 전략 작물 전환을 통해 쌀 의존도를 낮추는 것도 대안이다. 한국의 경우, 민간 RPC 역할 확대와 쌀 소비 감소에 맞춘 정책으로 일본의 전철을 피할 수 있다.

 

한국 쌀, 일본 관광객의 구원투수?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쌀을 사가는 현상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일본 쌀 시장의 구조적 위기를 반영한다. 한국 쌀은 저렴한 가격, 우수한 품질, 안정적인 공급으로 일본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여행 가방에 쌀 포대를 넣고 돌아가는 일본 관광객들의 모습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쌀값 폭등과 공급 부족이라는 일본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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